작년과 올해를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내용을 가사로 썼다. 마치 남에게 훈계하는 듯한 말투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다. 멋모르고 밴드를 시작한 후 십 년이 지났다. 별의별 경험을 다 했다. 다양한 사람들도 만났다. 그러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은,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거다. 날고 기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고, 그건 경험이 쌓인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남들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각자 씩씩한 척하며 제 갈 길 가면 되는 거다. - 장기하 < 그건 니 생각이고 > 일곡일담 중

결과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좋은 결과에 미화되는 과정과 나쁜 결과에 가려지는 노력들. 상당한 운과 인간이 만든 제도의 필연적인 결함. 살면 살수록 인생의 랜덤함을 온몸으로 체감중이다. 성과가 화려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그간 한 노력에 정비례한 결과를 얻었다고 굳게 믿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레 그만큼의 성과를 못낸 사람은 분명 노력이 부족했을 거라고 여기곤 한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당시의 나도 그랬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미친듯이 공부했으니 내가 얻은 결과는 오로지 내가 얻은 것이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 굳은 믿음은 조금씩 깨져 갔다. 가끔은 노력이 좀 배신할 때도 있다. 아니, 생각보다 많다. 성과는 결코 노력에 정비례하여 주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모 고등학교에서 3년 내내 전교 1등을 독차지하던 친구가 있었다. 전교 1등을 제하더라도 이 친구를 잘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정말 똑똑한데 무서울 정도로 열심히 하기까지 하는 친구라고 칭찬하곤 했다. 그런데 이토록 인정받던 이 친구가 돌연 대학 입시에서는 서울대학교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 놀라운 소식에 사람들은 도대체 이 친구가 무엇이 부족했을지에 대해 저마다의 가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나도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다. 그래야 나의 합격이 더 유의미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친구가 그저 운이 없었고 그 친구를 알아보기에 대입이라는 제도가 완전하지 않을 뿐, 그 친구가 떨어져야만 하는 논리적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로또 1등이 전날 꾼 꿈에 이목이 집중되지만 사실 그 꿈엔 아무 의미가 없듯이 말이다. 이와 같은 사례가 수없이 많다.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결과에 어떤 논리적인 이유와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만, 사실 우리 사회가 안고 돌아가는 굉장히 많은 비논리 중 하나일 뿐이다. 요새 즐겨보는 웹툰 <지옥>도 비슷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의 실수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라고… 그렇잖아요. 신이 무작위적으로 인간을 벌할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그게 진실이더라구요. (중략) 그 거대한 무의미를 인간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냐고요! 인류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잖아요! 인간은 의미를 필요로 해요. 이 기괴한 일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신의 의도라는 믿음! - 웹툰 <지옥> 중

설사 그게 신이라고 하더라도 그 신의 의도가 새진리회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는 그 신을 거부할 수밖에 없어요. 적어도 우리를 위한 신은 아닐 테니까요. - 웹툰 <지옥> 중

웹툰 <지옥>에서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했지만, 나는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많은 무의미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꾸 그 무의미를 견디지 못하고 좋은 결과를 맹목적으로 추켜세우고 나쁜 결과에 괜한 이유를 만든다.

그렇다면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물론 그 정도로 내가 디스토피아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성과가 정해지는 방식이 노력에 정비례하는 함수는 아니지만, 노력이 그 함수가 가진 변수들 중 하나임은 확실하다. 따라서 노력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과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올림픽을 좋아하는 친구가 올림픽의 정신이 왜 존중(respect)인지에 대해 설명해준 적이 있다. 올림픽을 잘 모르는 나는 단순히 선수들이 상대방의 패배를 위해 자신의 승리를 위해 치열한 경기를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사실 올림픽의 철학에 따르면 이 악 물고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오히려 상대방을 존중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화려한 승리와 경력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정말 감동을 주는 것은 따로 있는 것 같다. 한 선수의 경기가 감동적인 이유는, 상대 선수를 꺾고 더 높은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 기록 뒤에 오랜 노력과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숨어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이처럼 경쟁이 아닌 존중의 관점에서 결과를 바라보면, 승리도 패배도 모두 같은 이유로 아름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