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최종 합격한 후에 이런 글을 남기면 더 멋있겠지만,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서 결과가 좋으면 별 거 아닌 과정도 미화하게 되고 결과가 나쁘면 반대로 잘한 것에도 괜스레 후회가 남곤 하더라. 그래서 좀더 꾸밈없이 기록할 수 있을 때 나를 돌아보는 차원에서 글을 남기려 한다.

G학교 서류 접수가 마감된 12월 15일로부터 며칠 지나지도 않은 12월 21일, 다음과 같은 메일을 받았다. 첫 인터뷰 오퍼다. 편의상 메일을 보내주신 교수님은 A교수님이라고 지칭하겠다.

메일
A교수님께 받은 메일

메일을 받고 처음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1) 와, 굉장히 열정적인 분이구나. (2) 왜 나한테 연락이 왔지?

(1)을 생각한 이유: 보통 박사생을 뽑을 땐 admissions committee에서 일차적으로 서류를 필터링한 후에 faculty review 단계로 들어가기 때문에, 보통 1월 중순에서 2월말 사이에 인터뷰 오퍼가 들어온다고 한다. 이를 고려하면 A교수님은 정말 짧은 시간 안에 서류를 검토하고 나에게 일찌감치 연락을 준 것이다. 심지어 내가 지원한 학교들 중 G학교의 접수 마감일이 가장 늦었는데도 말이다. 일단 어마어마하게 부지런한 분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스피드보다도 더 놀라웠던 것은 메일의 엄청난 친절함이었다. 단순히 말투가 친절했다는 뜻이 아니다. 우선 본인이 인터뷰에서 어떤 질문을 할지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인터뷰를 준비하는 학생 입장에서는 대단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질문리스트
면접 일정을 정하기 위한 Calendly. 좌측에 질문이 정리되어 있다.

더욱이 메일 하단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연구를 하는지 알기 쉽게 요약해주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That means I will be heavily invested in your success”라는 부분. 사실 교수라는 직업이 가진 권위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면 학생에게 먼저 다가오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 않은데, 이렇게 학생에게 본인 연구를 열심히 어필할 정도로 열정 넘치시는 분들을 보면 큰 자극이 된다.

메일 하단
추신으로 붙어 있던 교수님에 관한 더 자세한 설명

(2)를 생각한 이유: 박사는 해외 석사나 학사와 달리 학교와 학생 간의 계약이라기보다 교수와 학생 간 계약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SOP 어딘가에 희망 지도교수를 서너 명 언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아예 희망 지도교수와 그 이유를 필수 질문으로 따로 답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admissions committee가 추려낸 지원 서류들을 해당 학생이 언급한 교수들에게 전달하여 faculty review가 이루어지는 식이다.

그런데 나는 애초에 G학교에 제출한 SOP에 A교수님을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락을 받고 살짝 얼떨떨했다. A교수님의 주요 연구 관심사는 security & privacy였다. 당장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암호학이나 네트워크처럼 나와는 거리가 있는 것들. 좀 보태면 블록체인까지. 여기까지만 생각했을 땐 내 SOP를 잘못 읽으셨나 싶었다. 교수님 웹사이트, 구글스칼라 등을 뒤지며 조사를 어느 정도 하고 나서야 왜 내 관심사와 본인의 연구분야가 오버랩된다고 생각하셨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극도로 테크니컬한 연구를 할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소프트하고 사회과학적 느낌을 풍기는 프로젝트가 꽤 많았다. 페이퍼 몇 편을 자세히 읽어보니 더 감이 왔다. A교수님은 security & privacy 이슈를 해결하고자 하며 그 과정에서 collective action 혹은 crowdsourcing을 줄곧 이용하는 사람이었다. 수단은 내가 해오던 것이어도 목적에는 익숙하지 않다는 점에서 살짝 핀트가 다르긴 하지만, 나름대로 교집합은 충분해 보였다. 어차피 내가 현재 가진 지식은 극히 일부일 뿐이고, 더 많은 것을 읽고 경험하다보면 나의 관심사도 조금씩 달라지리라 생각하기에 이것을 크게 문제 삼진 않았다. 또한 A교수님 연구실에 가지 않게 되더라도, 뒤에 잡힌 다른 인터뷰들을 준비하는 연습이 될 수 있기에 어떻게 되든 가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열심히 인터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Part 1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