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는 정량적인 것들에 매진한 시간이었다. 12월이 원서 제출 마감이었던 탓이 크다. 결과적으로는 대부분 원하던 “숫자”를 달성했다. 그러나 과정 측면에서는 배운 것도 많지만 “숫자”에 자꾸 집착하다보니 열등감에 사로잡혀 즐거운 날보다는 우울한 날이 더 많았다. 존재하지도 않는 남들의 비웃음을 떠올리면서 괴로워했는데 사실 나를 가장 많이 괴롭히는 건 언제나 나 자신이었던 것 같다.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을 이렇게 글로나마 털어내니 한결 개운하다.

나를 칭찬해주고 싶은 것들

  • 정신없이 살아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데는 미흡했던 것 같지만, 당장 내 눈앞에 놓여진 일은 뭐가 됐든 열심히 해온 것 같다. 사려깊진 못했으나 부지런하게는 살았지 싶다.
  • CHI 서브미션도 원서 제출도 결과는 둘째치고 일단 끝을 봤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더 보장된 진로에 도전해야하는 것 아닌가 흔들린 순간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개의치 않고 일단 밀고 나간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 남자친구의 졸업을 계기로 나의 대인관계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처절히 깨달았다. 연초에는 학교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급격히 증가해 많이 외로웠는데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독립심을 기른 것 같다.

더 나아졌으면 한 것들

  • 내 멀티태스킹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생각없이 일을 벌인 것. 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쳐놓고 민폐만 잔뜩 끼쳐 미안한 사람들이 몇 있다.
  • 제3자의 말로 타인을 평가하지도, 그 제3자가 되지도 말아야겠다. 제3자의 시선은 한 사람이 가진 여러 측면을 저마다의 잣대로 재단해버린 결과물이다. 하지만 오만한 모습도 불안한 모습도 모두 한 사람의 모습일 수 있다. 두 모습은 모순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하나가 진실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다양한 마음, 관계, 모습들이 반드시 한 가지로 정의될 필요는 없다. 나는 나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관심 없든 그냥 모두를 사랑하기로 했다. 함부로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 올해 나의 가장 큰 깨달음이다.
  • 당분간 SNS 이용을 줄이고자 한다. 다짐의 의미에서 아예 앱을 지웠다. 내 남자친구는 SNS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이런 나의 결정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사실 나는 SNS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긴 하다. 미투운동이나 아이스버킷챌린지 등 선한 영향력을 확산할 때도 많고, HCI 분야에서 소셜미디어 자체를 연구 주제로 자주 다루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HCI 연구자들이 SNS를 통해 연구를 PR하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단 재미있지 않은가. 문제는 내 자존감이다. 불안정한 상태로 SNS를 하다보니 남자친구 말대로 부정적인 영향만 잔뜩 받는 것 같다. 건강하게 사용할 자신이 생길 때까지 최소한만 하고자 한다.
  • 비슷한 맥락에서 마음이 건강해지도록 노력하려 한다. 평가 잣대를 외부가 아닌 내부에 두어야 한다는 건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여러 가지 바쁜 일을 핑계로 자꾸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는데, 이젠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며 마음을 다잡는 여유도 가져야겠다. 내 형편없는 모습을 보고도 날 응원해주는 가족, 남자친구,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나를 좀더 사랑해야지.

길이의 차이를 보니 칭찬보다는 반성할 일이 더 많은 해였나보다. 지난 일은 내려놓고 새해에는 더 신중하고 멋진 내가 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