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한 오해와 지난한 이해.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일단은 판단을 유보해야 하고, 풍문의 진위를 주체적으로 가려야 하며, 타인을 매도하는 은밀한 쾌락도 포기해야 한다. 이것은 꽤 귀찮고 피곤한 일이다. 반면에 오해는 얼마나 간편하고 쾌적한가. 우리는 가장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결론에 끌린다. 그러니 언론만 탓할 일도 아닌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까지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늘 하고 있는 일이니까.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자신은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우리는 자주 위로 받는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출처: 정확한 사랑의 실험, 지원이 블로그, 우리가 본 바다)

그러나 종종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 힘겨울 때는 간편한 오해를 택하곤 한다. 선뜻 나의 약점을 보였을 때 지레 겁을 먹고 나를 멀리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를 걱정하며 곁에 남아준 사람들이 있다. 아쉽게도 내가 그릇이 큰 사람이 아니라 후자에 대한 감사로 전자에 대한 원망을 덮는 것이 쉽지 않다. 원망이 좀처럼 가시지 않을 때는 그들을 그냥 나쁜 사람으로 오해해버린다. 내가 준 상처는 고려하지 않고 내가 받은 상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선택이지만 멀어진 사람들까지 이해할 마음의 여유는 없는 것 같다. 때로는 지난한 이해보다 단순한 오해가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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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한밤중에 큰 태풍이 와서 기숙사가 난리법석인데도 그냥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을 정도로 어떤 면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둔감해서 내가 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읽고 보니 나는 또 다른 측면에서는 오히려 예민한 사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민함의 동의어로 줄곧 피곤함을 떠올리던 나에게 이는 살짝 불편한 사실이지만 예민한 나의 모습도 사랑하려 노력해야겠다. 스물일곱 먹어서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차츰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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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가까운 사람들에게 정서적 지지를 좀 받으면서 살아가야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지지기반이 전혀 없으면 그 어떤 독립성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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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 Steve Jobs

무언가에 대한 선망이 건강한 동경심 내지는 일상적인 부러움을 넘어서 과한 열등감이 될 때, 죽음을 떠올리면 손쉽게 다시 적절한 수준으로 돌아올 수 있다. 중대한 의사결정도 죽음을 떠올리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좀더 쉽게 결론이 난다. 극심한 후회로 이불킥하며 혼잡했던 마음도 죽음을 생각하면 별일 아니라는듯 편안해진다. 현명하고 건강하게 사는 데 가장 극단적인 어둠이 유용하다는 모순적인 인생의 작동 원리가 새삼 위로가 되는 것 같다. 순도 높게 밝은 사람 말고 어딘가 어둡게 얼룩진 사람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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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이 매일마다 바뀌는 나지만 지금 이 시각 가장 중요한 기준은 허영심인 것 같다. 타고나길 관종으로 태어난 나의 어찌할 수 없는 허영심을 상쇄해주는 실속 있는 사람이 좋다. 나의 남자친구는 허영심이 0에 수렴하는 인간으로서 나의 이상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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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생각을 멈추고 할 일을 하라.